자리양보의 기억

2007. 8. 29. 23:51

노약자석이 그대를 유혹할지라도 딱 30년만 참으세요 ^^

다리 불편해 앉은 노약자석..어르신께 혼났습니다.

읽다가 예전 생각이나서..

다리를 뽀개먹은 덕분에 수술 후 보조대를 차고 다니던 무렵. 보조대 덕분에 다리가 60도 정도까지 밖에 굽혀지지 않던시절이니 한창 회복되어 가고 있던 시절. 그냥 서있는건 그럭저럭 할만했지만, 서서 버스나 전철의 흔들림을 감당할만한 다리는 아니었다. 품이 넓은 바지를 입으면 거의 보이지 않는 보조대 때문에 겉보기엔 정상이지만, 걷는건 살짝 절룩이던 시절의 기억.

기억 하나.

1호선 지하철 안. 노약자석이 남아있는 전철에 서서가기가 힘들어 앉아있었다. 역을 하나둘 지나면서 사람은 점점 들어찼고, 반쯤 졸며 가던 내 귀에 들리는 한마디. '젊은 사람 좀 일어서지?'(말투가 걸작이었는데 글로쓰니 별로 와닿질 않는다) 너무 당당하게 자리를 '요구'하는 말투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대략 사십대 중후반의 아저씨와 아줌마 커플. 옆에 아줌마를 앉히려고 좀 만만해보인 날 선택한 모양. 가뜩이나 몸도 안좋고 피곤하던 차에 시비를 걸어주니..결국..울컥.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앉은채로 소리를 버럭질렀다. 보조대 탁탁 치면서. 누가 앉고 싶어서 앉냐, 다리 수술하고 불편해서 좀 앉았는데 그게 그렇게 불만이냐. 그럼 비켜줄테니 앉아서 편하게 잘 가라고. 버럭질연발 ;;

순간 주변의 시선집중. 아줌마는 어쩔 줄 모르고 미안하다고, 몰랐다고 연신사과. 하지만 정작 사과해야 할 아저씨는 고개만 돌리고 못본척 헛기침만 연발. 그 모양새에 더욱 열이 뻗쳐 한참을 씩씩거렸다. 아저씨가 미안하다고 했으면 금방 진정될텐데 끝까지 미안하단말은 한마디도 안하더라(이게 제일 열받았다). 결국 아줌마의 계속 되는 사과에 내가 좀 진정되니 둘이 다른칸으로 슬쩍 이동..

기억 둘.

친구네 집에 놀러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종점이라 일단 버스는 오면 빈차가 되는데, 당시 줄의 뒷쪽에 서 있어서 버스를 타려고보니 버스안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서서는 못가겠기에 다음차를 타기로 하고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그렇게 다음차를 기다려 앉아서 가던 도중 어느 아주머니가 물었다. '같이 가는 할아버지가 자기 시아버지인데 몸이 불편하셔서 그러는데 혹시 자리양보 좀 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투가 정중해서 비켜드리고 싶었지만..내 다리도 정상은 아니라 '죄송하지만 저도 다리가 안좋아서요'라고 거절했다. 왠지 거절하고 나서도 좀 미안한 기분..

결론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ps. 보조대 이전에 목발짚던 시절에는 서서 가본적이 없다. 타자마자 누군가 자리양보. 감동이었다. 그런데 자리 비켜주는건 대부분 일반좌석에 앉은 아줌마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론 그랬다. 아줌마들이 자리에 무척 집착한다고 하지만 겪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ps2. 우리나라 대중교통 승객중에 장애인이 별로 없는 이유는 '이용이 불편해서'다. 목발짚고 하루만 돌아다녀봐도 장애인들이 왜 이동권 때문에 시위하는지 알겠더라..넘치는 계단왕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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